치명적 유혹
시나브로 | 총2화
  장르: 성인 19
스토커 기질이 다분한 남성을 향한 유혹.

치명적 유혹 [상]

 



 





나는 밤 10시가 지났는데도 가게 셔터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남자를 우연찮게 목격한 것은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생각에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남자는 내가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까지 시계추처럼 쇼 윈도우 앞을 왔다 갔다 하는 끈끈함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불현듯 이상하리만치 수상쩍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면 굳이 쇼 윈도우 안을 훔치는 듯한 시선으로 힐끔거릴 필요까지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뭐야, 정신 헷갈리게!' 

속으로 투덜거린 나는 혹시라도 안면이라도 있나 싶어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요모조모 뜯어봐도 전혀 기억이라고는 백지상태인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자였다. 

이럴 때 사람은 착각은 자유라는 말에 쉽게 현혹되는 모양이다. 

'혹시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거 아냐?' 

이미 혼기를 놓친 서른다섯 노처녀인 내 눈에 백마 탄 기사는 아니지만 30대 중반의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몹쓸 상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몹쓸 상상이 이상한 쪽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고 말했다.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지. 안 그래도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데 이참에 어디 쇼킹한 사건 한 번 만들어 봐!'

결국 나는 한동안 기회가 없어 본능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 냉정하게 말하면 병적이라 할 수 있는 성적性的 괴벽을 슬그머니 끄집어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남자의 시선과 내 시선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맞닥뜨린 것은 내가 의자에서 일어날 때 남자 역시 쇼 윈도우 안을 흘끔거린 바로 그때였다. 

순간 남자는 제 풀에 놀란 듯 황급히 시선을 거두며 잽싸게 등을 돌렸다. 

'안 돼!'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부리나케 출입구 쪽으로 몸을 날려 출입문을 앞으로 당긴 나는 등을 보이고 있는 남자에게 내 자신조차도 놀랄 정도의 상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손님, 볼 일이 있으면 들어오셔야죠. 여기라고 남자가 못 들어 올 곳은 아니니까요." 

열 남자를 홀리고도 남을 내 트레이드마크인 그 야시시한 상냥함이 주효했음인지 남자가 힐끗 주위를 살피고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출입문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섰다. 

'됐어!'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의 휘파람을 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의 곱상한 인상이나 허우대가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속된 말로 심심풀이 땅콩 씹듯 하룻밤 정도는 아무 부담 없이 가지고 놀 정도의 성적 매력을 풍기는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게 안으로 들어선 남자는 이마에 송골송골 배어나 있는 식은땀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선을 어디에 둘지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애처로울 정도로 주눅이 바짝 들어있었다. 

한마디로 숫기라곤 전혀 없는 그런 낯빛이었다. 

'세상에, 아직 이런 남자가 있다니 …!' 

아닌 게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이 당황스럽고 좀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 아무리 여자 속옷과 스타킹을 주로 취급하는 매장이지만 이런 얼뜨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내 눈에는 이 남자가 어쩌면 신혼 첫날밤에 신부의 브래지어와 팬티를 벗기는 용기조차 없는 전형적인 촌놈(?)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내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켜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검정 망사 팬티와 브래지어만 달랑 걸치고 있는 마네킹에는 시선을 주기는커녕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치 쳐다보기라도 한다면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잔뜩 녹아나 있는 그런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의 그런 덜떨어진 임기응변(?)이 나에게는 신비로움이었고 신선한 자극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고,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계곡에서 들이마시는 한 줌의 공기와도 같은 청량함 그 자체였다. 

'이거 상상 그 이상으로 재미있겠는 걸!' 

문득 나는 그 청량함에 동화되어 흠뻑 젖고 싶은 묘하면서도 야릇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한 마리 암컷이 발정을 내는 위험천만한 순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남자를 통해 성적 쾌감을 탐닉하고 싶은 욕정이기도 했다. 

"손님, 보시다시피 여긴 손님 한 분뿐이잖아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는 손님이 뜸한 편이니까 부담 갖기 마시고 마음 편하게 용건을 말씀하세요. 자, 일단 여기 앉으세요."

우선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긴장을 풀어 줄 필요가 있었기에 예의 상냥한 얼굴로 티 테이블에 딸린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아, 네." 

그제야 남자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는지 의자에 엉덩이를 살며시 걸치며 서류가방을 무릎 위에다 내려놓았다. 

"그래,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저, 저 … 그러니까 …." 

얼굴을 잔뜩 붉히며 말까지 더듬는 걸로 봐서는 진즉 하고자 하는 말을 내뱉으려면 하세월도 하세월이지만 날밤을 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서둘러 응급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저한테 사적인 볼일이 있는 건 아니시죠?" 

그렇게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물은 것은 나한테 어떤 감정을 품고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왜냐면 이런 숙맥중의 숙맥은 꿈에 만날까 겁이 날 정도로 밥맛이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네." 

일단 나는 다행스럽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우유부단한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남자는 스토커 기질이 다분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선물 때문에 오신 건가요?" 

불을 보듯 훤한 질문이었지만 남자를 편하게 유도하기 위해선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제야 나도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마주 앉았다. 

앉으면 허벅지 안쪽 뽀얀 살집이 가차 없이 드러나는 짧은 스커트라 다리를 포개지는 않았지만 시선을 잘만 굴리면 와이계곡 안쪽 깊숙한 음지, 그러니까 팬티까지는 아니더라도 망사 스타킹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허연 속살 정도는 훔칠 수 있을 정도였다. 

"…" 

남자가 그걸 의식했음인지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더니 예의 시선을 어디에다 둘지를 종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나마저 짐짓 당황해 한다거나 어색해 하면 분위기는 급속도로 얼어붙기 마련인지라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자연스런 표정으로 넌지시 말했다.

"손님, 누구한테 선물하실 건데요? 친군가요?"

"아, 아뇨."

"그럼 애인이군요?" 

그때 남자는 시선을 무릎 위 서류가방에 떨군 채였다. 

"네." 

그 대답에 나는 어쩌면 이 남자를 요리하기 위해선 많은 인내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애인 되시는 분 사이즈를 알고 있나요?" 

"그, 그게 …." 

남자는 무슨 말을 하려다 도로 안으로 삼키고 말았다. 

순간 나는 이유 없이 치미는 갑갑증에 따귀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참아야했다. 

"대충이라도 몰라요?" 

"그, 그러니까 …."

"이봐요, 손님, 주저하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해요!"

급기야 나는 속절없이 치미는 견디기 어려운 갑갑증에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투로 다그치듯 했다. 

"그게 그러니까 … 아, 아가씨 와… 비, 비슷 …."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듯했고 시선은 붙박이처럼 자신의 무릎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간파했다. 

"그러니까 손님 말씀은 애인 되시는 분 사이즈가 저와 비슷하다는 거군요?" 

"네, 그래서 도, 도움을 청할까 했는데 … 막상 들어서려니까 …." 

"그래서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군요. 남자 체면에 이런 곳에 들어선다는 게 남세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에요. 

"… 네."

나는 어이가 없어 기가 막힐 지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박력 없는 후줄근한 패기로 애인에게 속옷을 선물하겠다는 마음 씀씀이가 가상하다 못해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일까. 

문득 나는 이 천연기념물(?) 같은 남자를 도와주고 싶은 이상야릇한 감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요. 제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어요? 마음 부담 갖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죄다 하세요." 

"그러니까 그게 …."

무슨 말을 할 것 같으면서도 말문은 쉽게 터지지 않았다.

"손님, 애인에게 속옷 선물은 오늘이 처음이죠?"

"… 네."

남자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좋아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어쩌면 말 못할 사연도 있을 것 같은데 … 말해 줄 수 있나요?" 

그 말에 남자는 용기를 얻었는지 속옷 선물을 결심한 동기를 말했는데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럴 법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 애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데 마땅한 구실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차에 회사 동료가 야한 속옷을 선물하면 장래를 약속한 애인이라면 손님의 의중이 뭔가를 읽고 응해 줄 것이라는 게 동기인 셈이군요?" 

"믿고 싶지는 않지만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보니 …." 

한 번 말문이 열리니 처음보다는 더듬거리거나 망설임이 덜했지만 여전히 말꼬리를 흐리는 것은 여전했다. 

"여자인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료의 말이 신빙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 그런가요?" 

순간 남자의 얼굴에 한줄기 희색喜色의 빛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요. 여자인 제 입장에서 생각해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전 아직 속옷 선물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말이에요." 

그랬다. 

여태껏 싸구려 팬티 한 장 선물이란 명분으로 받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왠지 모르게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그럼 아가씨가 … 야, 야한 걸로 세트로 골라주시겠습니까?" 

야하다는 첫 마디가 한번 굴절이 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듯했다. 

해서 나는 짐짓 마음에도 없는 내숭을 떨어야 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분위기에 젖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옷을 벗는, 자존심도 없는 하찮은 여자로 보이기는 싫어서였다. 

"글쎄요. 그냥 단순하게 야한 걸 원하지만 애인 되시는 분의 취향을 모르는 나로선 어떤 디자인을 권해야 할지도 그렇고 … 그리고 잘만 되면 손님은 애인과 하룻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행운까지도 누릴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인데 막상 권하려고 하니 망설여지는데요." 

이만하면 내숭 9단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싶었다. 

그러자 남자가 돌연 정색을 하며 간곡한 청을 넣기라도 하듯 매달렸다. 

"아닙니다. 이런 장사를 하는 아가씨가 권하는 거라면 그냥 믿고 살게요. 그러니 아무 부담 갖지 말고 어울리는 걸로 한 세트 골라주세요! 이렇게 부탁할 게요!"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남자가 측은하고 안쓰러웠다. 

3년을 노심초사 하며 처녀지處女地나 다름없는 애인의 와이계곡에 아랫도리 자존심을 꽂고 싶어 안달하는 남자의 처절함 몸부림을 보는 것 같았다. 

"좋아요. 한번 해볼게요. 왠지 손님의 절실한 마음을 모른 척 한다는 게 좀은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고마울 것까지는 없다고 봐요. 그럼 요즘 젊은 층에게 선물로 잘 나가는 디자인이 하나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 

남자는 대답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했다. 

어떤 디자인을 권해도 이의를 달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



 



나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파닥거림을 즐기기라도 하듯 냉큼 의자에서 일어나 입고入庫 날짜로부터 3일을 버티지 못하고 날개 돋치듯 팔려나가는 요상하기 그지없는 팬티 한 장을 들고 남자 앞에 다시 앉았다. 

"손님, 이런 디자인 어때요?" 

내가 남자에게 강력추천 명분으로 내민 건 끈 팬티라고도 불리는 블랙 톤의 망사 T팬티였다. 

"아, 아가씨! 이, 이건 …!" 

한순간 두 눈을 휘둥그레 뜬 남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왜 놀라세요? 다소 도발적인 디자인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손님의 본심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이게 제일 나을 것 같은데 …."

"그, 그러니까 … 저더러 이걸 선물로 하라는 겁니까?" 

남자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은밀한 부위를 가리는 쪽이 망사로 처리된 거라 다소 야한 면도 없진 않지만 이걸 선물로 받는 수간 애인은 속으로 흡족해 할지도 모르죠." 

"그래도 … 이건 좀 그렇지 않나요?"

"손님 눈에는 야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애인 눈에는 정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 직접 한번 만져 보세요. 고가인 만큼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촉감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어서요!"

"어어, 이게 아닌데 …."

남자는 내가 억지로 건넨 팬티를 얼결에 오른손으로 받았다.

"어때요? 기분이 묘하지 않나요?"

"세상에, 이런 팬티가 다 있다니 놀랍군요!" 

요염한 자태를 뽐내기라도 하듯 자수로 처리된 흑장미 한 송이가 유혹의 혀를 날름거리는 있는 팬티를 받아 쥔 남자의 손은 만져선 안 되는 물건이라도 들고 있기라도 하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굴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열이 치받쳤는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설득의 세치 혀를 놀렸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이 정도 디자인이면 애인이 손님의 진심을 알아 줄 것 같아 권하는 겁니다." 

"저, 정말 … 그, 그럴까요?"

남자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팬티와 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물론이죠. 장담하건데 틀림없이 손님의 소원이 이루어질 겁니다." 

"아가씨말대로 된다면야 저야 더 바랄 게 없겠죠."  

"근데 어쩌죠?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

마침내 나는 남자의 표정을 살피며 남자에 대한 애초의 흑심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 멘트를 날렸다.     

"걸리는 게 있다뇨?"

"제 말은 그냥 이렇게 보는 것 하고 입고 있는 걸 보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까 싶어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까 애인 체형이 저와 비슷하다 그랬죠?" 

"네. 거의 비슷해요. 키도 아가씨처럼 늘씬하거든요." 

나는 그 말에 마지막 미끼를 던졌다. 

100%이상 걸려들 것이라는 장담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말이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친절봉사 차원에서 이 팬티와 세트로 된 브래지어를 제가 직접 입고 얼마나 섹시한지 확인시키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네에? 아, 아가씨가 이걸 직접 입어본다는 말씀인가요?" 

"그럼요. 그래도 명색이 애인에게 선물할 건데 그냥 디자인만 보고 산다는 건 좀 그렇잖아요?" 

"그, 그래도 그건 좀 …."

남자는 선뜻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알아요. 무례한 짓이라는 거 …. 하지만 고가의 물건을 파는 제 입장에서는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 그래요." 

"…"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갈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인에게 선물은 해야겠고 하자니 정말 애인에게 잘 어울리는 디자인인지 확인이 필요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자니 내 섹슈얼한 제의를 용납해야 하니 어찌 보면 솔로몬의 지혜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남자의 갈등은 나에게는 미끼를 낚아채는 입질에 비유할 수 있는 짜릿한 손맛이기도 했다. 

나는 그 손맛의 짜릿함을 절도당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남자를 구슬렸다. 

"호호,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요. 그냥 란제리 패션쇼에 초청된 걸로 생각하면 되잖아요." 

"거참 …."

남자는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럼 준비할 게요. 아마도 제가 잘 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 

남자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하는 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체념의 빛을 얼굴 가득 두르고 있었다. 

하여 나는 패션쇼에 어울리는 분위기 조성에 바삐 움직였다. 

서둘러 가게 셔터는 내린 나는 실내조명은 선정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라이트 블루 빛으로 바꾸었다.

그때 남자는 완전히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명색이 사내라고 내 일거수일투족을 은근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손님, 지금 기분이 어때요?" 

즉석 패션쇼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내가 카운트 쪽에서 나오며 그렇게 묻자 의외로 남자의 반응이 침착했다. 

"그게 지금 아가씨가 하려고 하는 패션쇼랑 무슨 상관이라도 있나요?" 

역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고양이에게 덤벼들려는 마지막 발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당할 내가 아니라는 거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응수 타진의 멘트를 던졌다. 

"호호, 미안해요.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나 봐요.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낯선 여자가 남자 손님 앞에서 야한 끈 팬티를 입고 패션쇼를 하겠다는데 흥분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참, 문득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 줄 거죠?" 

"… 뭐죠?"

"설마 속옷 차림의 여자를 처음 보는 건 아니겠죠?" 


[]

2015-05-26 by 썰맨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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